현실 너머의 세계를 바라본다는 것 혹은 다르게 본다는 것

사이미술연구소 이승훈

사람들은 현실 속에서 삶을 살아가지만 동시에 마음 가운데에는 누구나 꿈과 이상향을 그리며 살게 된다. 그리고 현실의 삶이 쉽지 않을수록 시선은 더욱 현실 너머의 세계로 옮겨 가기 마련이다. 양지훈 작가의 작업은 표면적으로는 현실과 이상향의 이미지가 섞여 있는 양태이다. 일부 작업은 현실의 이미지에 근접해 있고, 또 다른 작업들은 이상적 이미지가 화면을 주도한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어떤 경우이든 현실 그대로이기 보다는 의도적으로 몇 겹의 레이어를 겹쳐 놓았거나 어떤 장면을 만들어 놓은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그래서 그려낸 작업들은 대부분 몽환적 양상을 드러내고 있으며, 일부 현실 속 물체를 사진으로 담아낸 작업들의 경우에도 꿈에서 본 장면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이처럼 양지훈 작가의 작업은 현실의 이미지들로부터 시작된 것들이지만 현실 너머의 세계를 향하고 있다. 나뭇잎이나 꽃과 같은 이미지들이 빛과 어우러져 아름답게 편집된 사진 이미지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평면적 추상화 같은 배경에서 화면을 뚫고 나오듯이 그려낸 이미지도 있다. 심지어 바람처럼 물결처럼 흐르는 회화 공간에 눈송이인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흰 점들만 쏟아지듯 뿌려져 있는 것 같은 추상적 화면도 발견된다. 꿈 속 혹은 상상 속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이미지들은 그 만큼 다양한 형태로 자유롭게 그의 작업에 나타난다. 그것은 환영과 같은 아름다움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그로테스크한 형태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그것이 인간의 꿈이자 욕망이기에 작가는 그의 작업에서 이와 같이 인간 내부에 담겨 있을 법한 것들을 표면 위로 끌어 올리려 하는 것이다.

예술가가 무엇을 보는가, 무엇을 그리는가는 그의 세계관을 보여준다고 할 때, 양지훈 작가가 지속적으로 현실 너머의 세계에 대해 그려내는 것은 척박한 현실을 넘어서는 길이 그곳에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작가 자신뿐 아니라 같은 현실을 살아가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동일할 것으로 보았던 것 같다. 그래서 작가는 그의 작업을 통해 우리가 꿈꾸는 것 욕망하는 것들을 가시화하고 밖으로 끌어내 보여줌으로써 이로부터 대화를 시작하고자 한 것이다. 그것은 몽환적이거나 작위적일 수도 있고 때로는 비현실적인 것들로 보일 수 있지만 작가는 그러한 환영들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보는 행위가 환영을 현실로 끌어당기거나 현실을 현실 너머의 차원으로 도약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작업은 현실이라고 믿는 가시적 세계가 어디까지 현실이고 현실이 아닌지 혹은 현실과 환영 사이에서 그 경계는 무엇이고 현실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등과 같은 좀 더 본질적인 질문을 촉발시킬 수 있기에 흥미로운 시도가 될 수 있다. 현실이 너무나 비현실적이기도 하고 현실로 믿었던 환영들이 수없이 발견되기도 하며, 반대로 꿈이나 이상에 불과하다고 보았던 환영과 같은 이미지가 현실이 되어 나타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양지훈 작가의 작업은 이처럼 현실과 환영을 혼성적으로 경험하게 될 때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간극에서 현실을 그리고 이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태도에 대해 점검해 볼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 현실은 간혹 이상을 바라보지 못할 정도로 시각의 폭을 좁혀 놓기도 한다. 그러나 작가는 이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현실을 다시 보게 만들 정도로 강력한 힘이 있음을 직시하면서 현실에서 현실 너머를 바라보는 것에 대해 그의 작업을 통해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현실을 꿈처럼, 꿈을 현실처럼 바라보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과 꿈을 혼동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좀 더 다르게 바라보는 방식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작가는 이렇게 현실에 대해 다르게 보기를 함으로써 현실을 주도적으로 자신의 시각 안으로 가져 올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결국 작가는 꿈이나 욕망은 지금 현실이 아닐 수 있지만 그것이 어느 순간 현실로 유입되거나 현실을 초월할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음을 그의 작업에서 확인시켜주고 있는 것이다.